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개변된 역사 (문단 편집) === 독소전의 시작 === 우선, 독일내 반전여론 공작과 트로츠키 암살 실패로 숙청된 베리야 일파를 스탈린이 직접 운영하는 NKVD에서 축출할 겸 이탈리아내 독일군이 동부로 오기 전 독일의 참전을 유도하고자 공작증거를 일부러 흘렸다. 그리고 라스푸티차 이전까지 최대한의 보급품들을 전방부대에 전달하며, 숙청 대상인 쿨리크의 미끼부대를 방치한채 바르샤바 공세 중단등 함정을 담당할 부대의 전력을 온전히 남겨둔다. 그리고 독일군이 함정에 걸려들자 공격을 가하고, 동프로이센까지 진격한다. 그러나 독일군의 방어전과 편중된 중공업 정책 때문에 무전기와 차량화 보병의 미비등 불균형적인 구조 탓에 50만의 피해를 입었고, 간신히 방어선을 돌파하기 직전 모든 보급품을 소모하면서 공세를 멈춘다. 게다가 군화와 의약품과 야전병원의 침대등 무리한 동원에 따른 보급품 부족도 심각해 부상병의 사망률이 50%에 달하고 있으며, 루프트바페가 제공권을 장악한 뒤 폴란드군의 사보타주를 간신히 복구한 철도망을 공격하면서 보급 수송에 차질을 빚는다. 피해 복구를 위해 소강상태에 있는 동안, 분위기 반전을 위해 트란실바니아를 확보하려는 헝가리와 협력하여 루마니아로부터 베사라비아와 북부 부코비나를 받으려 한다. 게다가 굳이 루마니아와 동맹을 맺어 헝가리와 유고를 연합국으로 붙일 생각이 없기에 영토를 얻는 선에서 마무리하려 한다. 결국 루마니아가 압력에 굴복하면서 영토를 확장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지속적인 피해 누적에 따라 일본이 요구하는 소일동맹을 고려하며 중국에 대한 지원을 철회하면서 중국공산당을 버린다. 서유럽에서의 전투가 격화되고 프랑스가 반격을 가하자 이에 호응하기 위해 동프로이센-폴란드 방면의 500만을 더해 핀란드 방면에도 100만명을 배치하며 공세를 준비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이 바로 일본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조약을 통해 중화민국과의 공식적인 관계 단절과 일본에 자원 지원을 대가로 일본으로부터 각각 북사할린에 대한 영유권 인정과 아프가니스탄과 이란 침공 지지를 받는다. 이 과정에서 스탈린은 몰로토프를 견제하고자 직접 조약에 서명했고 일본과 불가침조약으로 관계를 설정한 것 역시 압도적 병력으로 연합군을 물리치고 유리한 평화협상을 이루어질 시 연합군의 공격을 받는 일본을 기습해 극동으로 세력을 확장하기 위함이기에 연합국이 평화협상을 거부할 시에 동맹으로의 발전을 고려중이다. 그렇게 준비가 되자 [[키릴 메레츠코프]] 휘하 극동의 100만 병력으로 핀란드를, 주코프와 쿨리크를 포함해 [[이반 코네프]]와 [[보리스 샤포시니코프]] 및 로코솝스키와 리스테르등 400만 병력으로 폴란드-동프로이센을 공격한다. 그러나 완벽한 계획도 쿨리크의 트롤짓으로 인해 실패하고 120만의 사상자와 50만의 포로를 내며 패배하게 된다. 이 일로 쿨리크는 처형당하고 스탈린은 소비에트 연방 대원수직에 오르며 군권을 장악한다. 이후 포로들과 투항자의 가족에 대한 [[연좌제]]를 실시하고 핀란드에 역량을 집중한다. 핀란드에서 메레츠코프가 100만 대군을 이끌어 만네르하임 라인을 무너트리고 카렐리아를 함락 직전으로 몰아넣으나, 핀란드의 결사항전과 라스푸티차로 인해 [[비보르크|비푸리]]에서 저지당한다. 이후 독일에서 소련을 저지하기 위해 보낸 루프트바페가 제공권을 장악해서 보급을 끊는 등 활약을 하여 재공세 이후로부터 50만정도의 피해가 발생하게 된다. 이 피해로 인해 메레츠코프가 스탈린에게 압박을 강하게 받으면서 프랑스가 오기 전에 핀란드를 끝장내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러나 권터 프린을 위시한 독영 연합군의 호위 하에 도착한 프랑스군에 의해 격퇴당하는 동시에 만슈타인의 해방작전에 말려들어서 포로로만 100만이 잡히는 큰 피해를 입는다. 계속되는 전황의 악화에 주코프를 비롯한 일선 장군들은 불만을 품으면서 점차 스탈린의 리더쉽에 금이 가기 시작하고 조심스레 쿠데타 모의를 하고 있다. 더군다나 스탈린이 소련군은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시도한 민스크 점령도 독일,폴란드의 강력한 저항에 실패하고 오히려 독일군이 라스푸티차 직전에 잽싸게 소련군의 허리를 잘라먹어서 투입된 200만 중 40만만이 맨몸으로 겨우 탈출하면서 스탈린의 권력은 더욱 불안해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